조원아의 실과 빛으로 빚은 수행적 회화 - 지각의 장으로서의 회화
 
서영옥(미술학박사), 2026 귀비고 기획전 전시 도록 中 (제공: 포항문화재단)

 
조원아의 작업은 실이 주재료이다. 여기서 실은 섬유가 아니라 선이며 선은 빛을 머금고 새로운 공간을 생성하는 존재론적 매체로 자리한다. 실로 직조의 방식을 차용하지만 직물의 기능을 재현하지 않는다. 조원아는 실이라는 물질을 회화의 언어로 전환했다. 그의 작업은 선과 빛, 공간과 시간을 하나의 조형적 장(場)으로 조직한 동시대 회화의 실험이다.
 
이번 전시 「선으로부터 빛이 울리다」에서 선보이는 조원아의 화면에는 자연이 남긴 에너지의 리듬이 가득하다. 바람이 스친 모래언덕의 결, 수면 위에 번지는 파문,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지형의 흐름이 보인다. 이것은 재현이 아니라 감각의 흔적에 가깝다. 다시 말해 조원아는 외부 세계의 이미지가 아닌 신체를 통과한 경험과 기억 속에서 다시 생성된 지각의 구조를 그려낸다. 이것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하나의 현상이며 관람자의 시선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난다. 조원아가 자연을 그리지 않고 자연이 몸에 남긴 감각을 조직하며, 빛을 묘사하지 않고 빛이 발생하는 조건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선은 빛으로 전환되고 빛은 공간을 생성한다. 공간은 다시 관람자의 지각 속에서 하나의 존재론적 경험으로 완성된다. 때문에 조원아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하나의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지각하고 빛으로 사유하며 공간 속에서 존재를 경험한다. 그의 작업은 실을 엮는 예술이 아니라 감각을 직조하는 예술이다. 물질을 넘어 지각과 존재를 사유하게 하는 동시대 회화의 깊은 성취라 할 수 있다. 결국 조원아의 회화는 현현(顯現)의 미학이다.
 
이 지점에서 조원아의 작업은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현상학적 지각과 맞닿는다. 메를로퐁티에게 세계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몸을 통해 경험되는 관계의 장이다. 우리는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본다. 조원아의 화면 역시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관람자의 몸과 시선이 개입하면서 비로소 성립하는 경험의 장으로 자리한다. 정면에서 완성되지 않는 작품이다. 관람자가 이동하는 순간 실은 각각 다른 빛을 반사하고 화면은 매 순간 새로운 깊이와 리듬을 생성한다. 이때 화면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몸의 움직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현상이 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회화이다. 가까이서 보면 수만 가닥의 실이 가진 물질성이 드러나지만 거리를 두는 순간 물질은 사라지고 빛의 흐름만 남는다. 물질은 스스로를 감추고 감각만을 남긴다. 바로 회화가 표면을 넘어 지각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공간성은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제시한 '확장된 장(Expanded Field)'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현대미술에서 매체는 더 이상 고정된 범주가 아니다. 조원아의 작업 역시 회화와 조각, 공예와 설치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작품은 평면 위에 존재하지만 실이 형성하는 층위와 빛의 반사는 입체적 공간감을 발생시키고 관람자의 이동은 작품 내부의 공간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조원아 작업은 평면회화이면서 동시에 공간예술이며 사물이면서 사건(event)이다. 조원아의 회화는 캔버스 안에만 머물지 않고 관람자의 몸과 공간까지 포함하는 하나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조원아가 구축하는 화면은 질서와 우연이 공존하는 생성의 공간이다. 수만 가닥의 실은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를 이루지만 빛의 반사는 작가조차 통제할 수 없다. 실과 빛, 시간과 공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상하지 못한 화면을 생성한다. 따라서 작품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이며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구조가 된다. 이러한 생성성은 질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에서 말한 감각의 회화와도 깊이 연결된다.
 
들뢰즈는 회화가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 자체를 발생시키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조원아의 작품 역시 자연을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이 남긴 진동과 리듬을 화면 속에서 다시 발생시킨다. 반복되는 선들은 모래언덕이 되기도 하고 성운이 되기도 하며, 소용돌이나 물결처럼 끊임없이 운동한다. 그러나 그 유동성은 실제의 운동이 아니라 감각이 만들어내는 운동이다. 관람자는 이미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화면이 발생시키는 리듬을 신체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을 이루는 반복적 노동은 단순한 제작 과정이 아니라 수행의 시간이다. 수만 개의 실을 한 올씩 붙이는 행위는 동일한 동작을 끝없이 반복하는 수행이다. 화면은 그 시간이 응축된 흔적이다. 따라서 조원아의 작품은 노동의 흔적이 아니라 수행의 흔적이다. 서울을 떠나 포항이라는 새로운 삶의 공간에서 이어진 반복의 시간은 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이면서 동시에 내면의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끝없는 선들은 삶의 호흡이며 반복되는 리듬은 존재를 지탱하는 정신의 구조다.
 
포항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가 깃든 땅이다.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건너간 연오랑과 세오녀를 따라 신라의 해와 달마저 빛을 잃었다. 세오녀가 다시 짠 비단을 하늘에 바치자 비로소 세상은 빛을 되찾았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건국 신화가 아니라 직조와 빛, 그리고 존재의 회복을 말하는 동아시아의 오래된 상징체계이다.
 
조원아의 작업은 우연하게도 이 신화와 깊이 연결된다. 한 올 한 올의 선으로 빛을 직조한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실은 더 이상 물질이 아니라 빛을 머금는 매개가 되고 화면은 빛을 되찾는 하나의 의식(儀式)이 된다. 세오녀가 비단을 짜 세상의 빛을 회복했듯 조원아는 실을 통해 보이지 않는 빛의 질서를 화면 위에 다시 세운다. 그의 작업에서 직조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를 회복하는 행위이며 빛은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삶을 지속하게 하는 정신의 은유가 된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빛이 태어나는 근원의 풍경이다. 실과 빛, 노동과 시간이 서로 교차하는 화면 앞에서 우리는 하나의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신화가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살아나는 순간을 경험한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가 인간의 손끝에서 세상의 빛이 회복된다는 믿음을 전했다면, 조원아의 회화는 반복되는 손의 수행을 통해 빛이 다시 공간이 되고 공간이 다시 존재의 울림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